인터뷰

2002년생 청소년 기후활동가는 왜 탄소중립위를 사퇴했을까

김한솔 기자

오연재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인터뷰

오연재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오 활동가는 지난 8월27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직에서 사퇴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오연재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오 활동가는 지난 8월27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직에서 사퇴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미래세대의 생존 보장’. 국내 첫 기후위기대응법으로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의 첫 번째 기본원칙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은 현 세대에게 더 크고, 따라서 현재 세대는 미래세대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 법에 명시된 것이다.

오연재 기후활동가는 2002년에 태어났다. 올해 20세가 된 ‘미래세대’인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청소년기후행동에서 환경운동을 해 왔다. 그는 다른 미래세대들과 함께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어디든 갔다. 기후을 위한 결석시위를 했고, 헌법재판소에 정부의 미흡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으로 기본권이 침해됐다는 헌법소원을 넣었으며, 국회 앞에서 시위도 했다. 지난 5월29일 대통령 직속위원회로 출범한 2050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의 민간위원으로도 참여했다. 그는 100명 가까이 되는 위원회에서 유일한 2000년대생이었다.

오 활동가는 지난달 27일 탄중위를 사퇴했다. 탄중위가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해 미래세대인 청소년의 의견도 듣겠다고 홍보한 지 얼마되지 않아 그만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사퇴 선언문에서 “기후위기 당사자들은 배제된 채, 정부와 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며 작동하는 거버넌스는 여전”했고, “그 결과 나온 탄소중립시나리오는 처참”했다고 했다. 탄중위는 지난달 5일 탄소중립 시나리오 1·2·3안을 발표했는데, 이 중 3안만 온실가스 순배출량이 0인 ‘넷제로’ 안이다. 1·2안은 온실가스를 1870만~2540만t 배출한다.

오 활동가는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제대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사퇴를 결정했다”고 했다. 합류 당시 “목소리를 낼 귀한 기회”라고 여겼던 탄중위 활동은 그에게 어떻게 실망감을 안겨준 것일까. 지난달 30·31일 이틀에 걸쳐 제주에 있는 오 활동가를 전화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오 활동가와의 일문일답.

-탄중위에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나요.

“올해 2월 말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을 통해 추천이 들어왔다고 했고, 3월 초 국무조정실에서 민간위원으로 확정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위원을 맡기까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추천 명단에 올린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이전까지 정부 위원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거나 목소리가 반영되는 자리로 생각되진 않았거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귀했어요. 기후 정책에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대통령 직속 위원회이기에, 조금 더 영향력있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2002년생인 제가 정부위원회 논의 테이블에 있는 것 자체가, 기존 논의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어요.”

2019년 9월27일 열린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의 모습.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처음 시작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는 전세계로 확대됐다. 가운데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 오연재 활동가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2019년 9월27일 열린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의 모습.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처음 시작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는 전세계로 확대됐다. 가운데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 오연재 활동가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탄중위 어느 분과에서 어떤 일을 했나요.

“왜인진 모르지만 국제협력분과에 배정됐어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던가, 왜 이 분과에 배정되었는지 듣진 못했어요. 갑자기 배정을 받고 제 역할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분과 배치에 대한 문의를 했지만, 제대로 된 답은 못 들었어요. 하지만 우선 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총 6회의 분과회의를 했어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안) 검토가 중심이 됐고,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대한 안건도 있었어요. 탄중위 내부의 청년 위원들과 소통하며 청소년과 청년 의견 수렴을 위한 논의도 했습니다.”

-현 탄중위 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후위기로 통제불가능한 수준의 재난 위험에 노출되고, 식량·주거·빈곤·노동 등 사회적 불평등이 더 심화되는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 그런 영향을 더 오래, 더 많이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기후위기의 당사자들이에요. 이런 당사자들이 배제되어서는 안되잖아요. 그런데 위원회 구성에서 이런 당사자들은 빠져있었어요. 우리 삶을 대변할 수 없을게 뻔했어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논의 과정에서 많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현실과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게 아니라, 빨리 탄소중립을 해야하는게 현실이에요. 과학자들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것이 피부로도 느껴지고 있고, 누군가는 생계도 위협받고 있어요. 진짜 ‘현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봐야 할 현실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현실론’ 속엔 ‘네가 잘 몰라서 그런다’ 같은 생각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평등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분들이 말하는 ‘현실’은 어떤 것이었나요.

“어떤 현실을 바라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진 못했어요. 어쨌든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이해관계자가 많다,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말로 계속 회피했던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떤 마음이었나요.

“답답함. 초반에 기대했던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는데 바뀌지 않는구나, 쉽지 않구나. 조금 더 열려있는 자리를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이 많이 답답했어요.”

오연재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가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서울녹색미래정상회의(P4G)에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강화를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오연재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가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서울녹색미래정상회의(P4G)에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강화를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탄중위가 발표한 시나리오 초안에 대해 어떤 의견이신가요.

“매우 불충분하며,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탄소중립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어느정도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탄소중립이라는 단어로 구색만 맞추는 안이 1안과 2안이에요.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이 너무나도 분명한 상황에서, 1·2안은 정말로 무책임하고 대책없는 안이라고 생각해요. 탄중위에서 만든 시나리오는 지금과 같이 온실가스를 막대하게 배출한 사회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불확실한 기술(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기술)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어요. 에너지 수요를 얼마나 줄일지는 제대로 담겨있지 않아요. 이는 기후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고, 기후위기로 인한 최악의 영향을 받는 이들의 의견은 배제한 결과물이에요. 이런 시나리오들이야말로 다음 세대에 기후위기 대응 책임을 떠넘기고, 사회의 전환 과정 자체를 방해하는 일이에요.”

-사퇴 선언문 중 ‘정부와 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작동되는 거버넌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 목표가 미흡한 수준인 것, 석탄발전소와 LNG는 존속하면서 불확실한 기술을 제시하는 것 모두가 기후위기 영향의 최전선에 놓인 이들보다 산업계의 이익만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위원 구성에서도 산업계 인사들은 충분히 확보한 반면에 노동계와 농민의 참여는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어요.”(탄중위 시나리오 1·2·3안 모두 산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5300만t이다.)

-사퇴를 결심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을까요.

“하나의 순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오랫동안 고민하고 결정한 것입니다. 단지 미래세대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의사결정의 주체’로 탄중위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위원직 하나를 맡고 있는 것이 제대로 된 논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어느정도 이미 정해진 방향’ 안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는데, 그 방향은 ‘어떻게든 지금까지 탄소배출을 해 온 사회 시스템은 유지하자’는 것이었어요. 정치 논리와 기업 이익에만 집중된 방향이었어요. 탄중위 안은 실험이 아니잖아요. ‘탄소중립 포기, 기존 시스템 유지’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어요.”

-‘기존 시스템 유지’라는 틀은 왜 유지될까요.

“하나의 이유가 있진 않을거라고 생각해요. 기존 시스템이 너무 익숙한 분들이 많고, 또 그런 분들이 중심이 되는 논의구조가 유지됐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요. 논의 구조와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여기에 아무리 무언갈 얹는다 해도 제대로 된 대응책은 만들 수 없어요.”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어떤 답을 들었나요.

“탄중위 자체에서 연락온 것은 없어요. 의사를 전한 뒤 윤순진 민간공동위원장님으로부터 ‘사퇴 결정을 존중한다, 탄소중립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함께 활동했던 분과장님, 위원들께는 결정을 존중하며 응원한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습니다.”

-그래도 남아서 의견을 관철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도 됐을 것 같습니다.

“네.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기회를 얻어 들어간 자리에서 끝까지 버티지 않고 나오는 것이 혹시 나쁜 선례로 남아, 청소년이나 청년 당사자의 정책 참여 창구를 좁히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컸습니다. 하지만 논의 구조 자체가 비민주적이고, 논의 결과도 기후위기의 당사자들을 배제한 결과가 나왔어요.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과연 미래세대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 방법인가’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죠.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이 논의 구조가 변하길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어요.”

-기후위기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지구상 어느 누구도 기후위기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어요. 하지만 재난의 위험과 피해는 모두에게 동등하지 않죠. 기존에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불평등은 기후위기로 인해 더 극단적으로 심화되고 있어요.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주거나 노동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재난 위험에도 취약하죠. 석탄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앞으로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생계를 위협받아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들의 이야기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어요.”

-앞으로 기후활동은 어떻게 전개해 나갈 계획인가요.

“청소년기후행동에서는 ‘기후시민의회’를 구성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앞서 말한 당사자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구성하려고 해요. 시민들이 누구나 각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부가 듣지 못한, 혹은 듣지 않는 각자의 이야기를 공론화 시켜 사회에서 지워버리지 못하게 끌어올려야 해요. 이르면 9월 말쯤 출범시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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