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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초록걸음 4번째 산청함양양민학살 사건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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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환경련 작성일13-06-12 16:37 조회3,8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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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함양 양민 학살 사건

김 행 민



얼마 전 제주도 4.3사건을 다룬 ‘지슬’이라는 독립영화가 나왔다. 아직 보진 못했지만
가까이 있는 지인의 가족도 포함한 얘기이고 시나리오에 관여도 했다 하고 지인의 부모님은 그 영화를 보고 지난일이 떠올라 몸져누우셨다고 한다. 그리고 또 최근엔 ‘거창,함양,산청양만학살’을 다룬 ‘청야’라는 영화가 만들어져 제작발표회를 가졌다. 모두 민족분단과 이념적 갈등으로 인한 잔혹한 공권력 투입에 의해 무모하게 희생된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6월의 초록걸음을 시작하게 된 이곳 산청의 방곡마을과 이웃이 바로 그 억울한 사건의 현장이다.

1.사건 개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7일(음력 설날 이틀째),중공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1,4후퇴를 하고 있던 중 지리산 공비토벌대인 국군 제11사단(사단장 최덕신) 9연대(제주도 4.3사건을 진압했음) 3대대에 내려진 작전 명령 ‘견벽청야(堅壁淸野)으로 행해진 만행이다.

그들은 거창군 신원 지서를 지키고 있다가 명령을 받고 넘어 오면서 빨치산의 습격을 받았는데 마을 주민들이 빨치산과 내통하였기 때문이라 하여 학살 피해가 더 컸다고 한다.

마을 전체를 적으로 간주하고 2월 8일 하루만에(두시간여) 가현(90명),방곡(180명),점촌(42명),자혜,화계,주상,화산(217명) 마을등에서 약 530여명, 뒷날 2월9일~11일 사이 거창 신원면에서 719명을 학살했다고 한다.

2.진상조사과 명예회복

두달 뒤 국회에서 진상조사가 이루어졌으나 거창 사건만 많이 부각되었고 산청 함양사건은 53년부터 ‘동심계(방곡마을 유족들끼리 몰래 결성)’를 결성하여 숨어 제사를 지내다가 89년 유족회가 결성되면서 본격적인 명예회복 운동을 시작했으나 많은 난항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당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 것을 두려한 학살자들은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국군들이 공비로 위장하여 진상조사단에게 총격을 가해 도망가게 한 사건까지 드러나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들의 혼을 더욱 분노케하였다. 또한 학살의 선봉에 있던 사단장(최덕신)과 9연대 대대장(오익경 중령)등은 승승장구하여 미국으로 건너갔고 다른 이들도 각지에서 시장등을 역임하여 온갖 호의호의식을 했다고 하니 이런 역사의 비극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말해야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또 하나, 이와 관련하여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에서 한꺼번에 유골과 유품이 발굴되어 (1998)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는데 아직까지는 어디서 온사람인지는 모르지만 11~14대의 버스가 군용 트럭을 앞세우고 마을로 들어와 구덩이를 파고 버스에 탄 사람 전원(약400~700명 정도로 추정)을 학살하였다고 한다.

그 발굴 현장에서 찍은 유품 사진들로 보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기에 그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 사진을 몇장 올리며 그들을 애도하고 이러한 사실들이 널리 알려져 그들의 진정성있는 명예회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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